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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서평 괴테의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생각한다: 노버트 메클렌부르크의 『괴테. 상호문화적, 트랜스문화적 시문학의 유희』(Goethe. Inter- und transkulturelle poetische Spiele)를 읽고 오순희 (서울대학교) Ⅰ . 들어가며 타문화를 대하는 태도는 언제부터 문제가 되었을까? 20세기 초,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그레이엄 썸너(William Graham Sumner, 1840–1910) 는 문화를 대하는 태도의 특징으로 ‘자문화중심주의’(Ethnocentrism)라는 개념을 유통시켰다. 어느 그룹이나 자신들의 문화를 중심에 두고 그것을 기준으로 다른 모든 것들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중엽, 알제리의 독립투쟁에 참여했던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1925–1961) 은 ‘문화제국주의’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에 따르면 부유한 중심부 국 가들과 가난한 주변부 국가들의 불평등 관계는 문화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다. 20세기 후반,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문학을 강 의했던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adie Said, 1935–2003)는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1978)에서 서구와 미국사회에서 통용되는 ‘오리엔탈리즘’의 실체를 해부했고, 이후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은 Trans–Humanities, Vol. 9 No. 2, June 2016, 287–300© 2016 Ewha Institute for the Humanities TRANS–HUMANITIES 288 새로운 유행어처럼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다. 사이드에 따르면 오리엔트 라는 이미지는 서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서구는 오리엔트를 자신 들의 타자로 설정함으로써 그와 반대되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자신들에 게 부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문화중심주의’나 ‘문화제국주의’에 비하면 ‘오리엔탈리즘’은 그 의미 가 덜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동방’을 의미하는 오리엔트가 구체적으로 어 디를 지칭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 (Der andere Orientalismus)1 의 저자 폴라섹에 의하면 오리엔트의 의미는 시대마다 다르고, 언어권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인다. 원래 오리엔트의 용 례는 구약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약에서 ‘동방’은 말하는 사람을 기 준으로 동쪽에 있는 곳을 가리킨다. 창세기 25장 5–6절에 보면 아브라함 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동방’은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동 쪽에 있는 땅을 가리킨다. 기독교의 중심지가 이후 점차 서유럽으로 옮겨 감에 따라 ‘동방’의 의미도 점차 서쪽으로 옮겨갔다. 따라서 이스라엘보다 서쪽에 있는 나라들도 ‘동방’으로 간주되기에 이른다.2 오리엔트의 의미가 말하는 주체를 기준으로 상대적인 방향 개념이라는 것은 동방에 해당되는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에서도 나타난다. 서유럽기준 으로 볼 때 가까운 동쪽이었던 지중해 동부는 근동(近東, Nahost)이고, 아 주 멀리 있는 동쪽 지방인 동북아시아는 극동(極東, Fernost)이 된다. 시대 마다, 또 언어권마다 다르기는 해도, 유럽인들이 ‘오리엔트’라는 표현으로 어디를 지칭하는지 거칠게나마 정리해본다면, 작게는 ‘소아시아’라고 불리 는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이스라엘, 시리아 등에 이르는 지중해 동부 연안, 1. Cf. Polaschegg. 2. Vgl. Der andere Orientalismus, S. 65f. 289 괴테의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좀 더 동쪽에 있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반도를 가리킨 다. 다시 여기서 좀 더 나가서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포함하기도 하고, 때로 는 중국과 일본등을 가리키기도 한다. 괴테도 오리엔트에 관심이 많았다. 괴테의 오리엔트도 유럽에서 가까 운 소아시아와 이란의 옛날 명칭인 페르시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반도 를 거쳐 인도와 중국 등까지 확대된다. 괴테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표현도 썼다. 그렇다면 이 오리엔탈리즘도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탈리 즘과 같은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노버트 메클렌부르크의 저서 『괴테. 상호문화적, 트랜스문화적 시문학의 유희』(Goethe. Inter- und transkulturelle poetische Spiele)3 (이후 『괴테』로 약칭)에서 어느 정도의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쾰른대 문학 교수를 역임한 메클렌부르크는 우베 욘존과 같은 현 대문학을 연구하는 한편으로 문화학적 연구에도 오랫동안 몰두해온 학자 다. 문화학적 문학 연구들은 2008년에 출간된 저서 『낯선 곳으로부터 온 소녀』(Das Mädchen aus der Fremde)가 대표적이다. 이 책은 ‘상호문화 성’이라는 주제로 계몽주의 시대의 레싱에서 시작하여 현대의 외츠다마르4 에 이르기까지 통시대적으로 독문학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부분적으 로만 다뤄졌던 괴테를 독립시켜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저서가 본 서평 에서 다루게 될 『괴테』이다. 『괴테』는 상호문화성, 트랜스문화성, 오리엔탈리즘, 세계문학, 대중문 화 등의 개념들을 가지고 괴테의 생애와 문학 속에 나타나는 타문화의 모 3. Cf. Mecklenburg. 4. Emine Sevgi Özdamar (1946–)는 터키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열여덟에 독일로 온 후로 터 키와 독일 양국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사회참여적인 작품들에 많이 출연했으며 영화배우로 서도 활동했다. 배우 활동 외에 작가로서 많은 작품들을 출간했고 문학상들도 수상했다. 장 편 소설 Das Leben ist eine Karawanserei, hat zwei Türen, aus einer kam ich rein, aus der anderen ging ich raus.(1992)는 “당신이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1권의 책 들”(1001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Die) 목록에 선정되기도 했다. TRANS–HUMANITIES 290 습을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오리엔트의 이미지다. 본 서평도 오리엔트를 중심으로 이 책의 주제를 논하기로 한다. 흥미로운 것은 괴테가 오리엔트 문화를 탐색하고 배워나가는 과정을 ‘상상 의 오리엔트 여행’이라는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이 책에서 ‘여행’ 이라는 키워드는 외국문화를 대하는 괴테의 태도뿐 아니라 괴테의 생애 전체를 ‘여행자’ 또는 ‘방랑자’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본 서평도 이 책에 대한 탐사 여행의 형식으로 구성해보았다. 이 여 행은 세 개의 중요한 역들을 경유하게 될 것인 바, 우선 상호문화성과 트랜 스문화성의 의미에서 출발해서, ‘상상의 오리엔트 여행’을 거쳐, ‘세계문학’ 이라는 종착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탐사 여행을 떠나보자. Ⅱ . 상호문화성과 트랜스문화성 어떤 문화에 대해 많이 접하게 되면 될수록, 그 문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규정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컨대 미국문화는 어떠하다 고 규정하는 순간, 그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 여러 현상들이 떠오르게 마련 이다. 어떤 문화를 이해해나가는 과정은 막연히 ‘하나’라고 생각했던 그 문 화가 사실은 ‘서로 다른 여러 문화들의 복합체’였음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러 문화들 사이의 ‘차이’ 또는 ‘다름’이 부단히 서로에게 영향을 미 칠 때, 이른바 ‘상호문화적’(interkulturell)이라고 불리는 현상들이 생겨난 다. 그러나 문화권의 경계를 넘어서도 공통적인 현상, 즉 ‘트랜스문화적 인’(transkultrell) 현상들도 있다. 요컨대 ‘상호문화성’(Interkulturalität)은 둘 또는 그 이상의 서로 다른 문화들 사이에서 관찰되는 특성이며, ‘트랜스 문화성’(Transkulturalität)은 어떤 현상이 개별 문화의 영역을 넘어서서 보 편적인 성격을 나타낼 때 드러난다. 메클렌부르크의 저서는 이러한 문화 의 두 속성에 대해 괴테가 매우 잘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 로 말하자면 괴테의 시각은 “보편주의  +  차이”(Universalismus plus 291 괴테의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생각한다 Differenz)라는 공식으로 요약되는데, 예컨대 중국문화와 독일 문화의 차 이에 주목하지만, 그와 동시에 중국사람들의 자연관에서 자신의 자연관과 유사한 방식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상호문화적인 차이’를 의식 하고 다른 한편에서 차이들의 근저에 깔려있는 공통적 원리를 찾아내는 괴테의 모습이 그의 시문학에 어떤 방식으로 투영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메클렌부르크는 괴테의 상호문화적 개방성이 당대의 문단에서는 예외 적인 경우였음을 강조하며 그것이 가능했던 배경을 개인적 특성과 시대적 배경 모두에서 찾아낸다. 개인적으로는 일찍이 외국문화를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집안의 영향이 컸다. 특히 괴테의 아버지는 괴테가 어 린 시절부터 일찍 외국어를 접하게 함으로써 이후 외국문화에 대한 접근 을 비교적 쉽게 만들어준다. 소년 괴테가 세계 각국의 언어로 소통하는 다 국어로 된 소설을 구상했던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괴테는 라틴어, 희랍어, 불어, 영어, 이탈리아어를 배웠고, 이디쉬 어, 히브리어도 약간 할 줄 알았다. 때문에 호메로스, 핀다르,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볼테르, 라신, 디드로, 바이런 등을 원서로 읽을 수 있었다. 괴테가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번역한 세계문학도 스무 편쯤 된다. 성경도 루터 성경뿐 아니라 라틴어로 된 성경(불가타)을 애독했으며, 코란도 라틴 어 번역본으로 읽었다. 그리고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 식으로 전유하려고 했다. 예컨대 코란의 한 구절을 인용해 마호메트에 관 한 송가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힌두교의 전설을 이용하여 발라드를 짓기도 한다. 어떤 시들은 내용은 그대로 번역하고 형식만 새롭게 바꿔보기도 했 다. 원서로 읽건, 번역본으로 읽건, 괴테는 그가 읽은 것을 끊임없이 스스 로에게 피드백 시켜 보았던 것이다. 이는 그의 문학 속에서 자주 발견되는 ‘상호텍스트성’으로 귀결된다. 예컨대 『파우스트』에서는 인도의 사쿤탈라 와 구약의 욥기에 의한 ‘상호텍스트성’이 발견되며, 괴테의 노벨레 「독일 이주민들의 환담」과 노년의 『서동시집』 그리고 마지막 장편 소설인 『편력 TRANS–HUMANITIES 292 시대』를 공통으로 엮는 것은 아랍의 『천일야화』에서 자극 받은 서사전략 임이 드러난다. 시대와 관련시켜 보자면, 괴테가 살았던 서유럽이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책에서 서술되는 바에 의하면 다른 세 계에 대한 개방적 관점, 다양한 종교의 인정, 사상의 자유, 보편적 시민권 등 문화적 경계선을 넘어서는 다양한 사상들이 이 시대의 주요 화두였고, 이러한 시대 분위기가 레싱과 헤르더에게, 그리고 괴테에게까지 전이되었 다는 것이다. 메클렌부르크에 의하면 괴테가 상호문화적 개방성을 획득하는 과정에 서 헤르더의 영향은 결정적이다. 당대 독일 지식인으로서 다른 문화들을 존중하는 자세에 있어서 헤르더를 능가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헤르더는 당대의 서구중심주의적 풍토에 대한 격한 비판자였다. 청년 괴테로 하여 금 약소민족들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지도록 한 사람도 헤르더였다. 그는 제민족의 역사를 그자체로 존중하면서도 그러한 개별 역사들의 흐름 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류학적 원리들을 찾아내고자 했다. 말하자면 헤르더는 ‘역사범신론’(Geschichtepantheismus)의 신봉자였던 것이다. 메 클렌부르크는 이러한 역사범신론에 빗대어 괴테의 ‘문화범신론’ (Kulturpantheismus)을 읽어낸다. 어딜 가나 고유의 문화적 가치들을 찾 아내고 그러한 가치들의 근저에는 어느 정도 공통의 이념이 지배하고 있 을 것으로 확신했다는 것이다. Ⅲ . “상상의 오리엔트 여행” 메클렌부르크의 『괴테』는 괴테와 다양한 문화들의 만남을 다룬다. 이 탈리아 여행도 다루고, 고대 그리스의 이미지도 다룬다. 그러나 이 책의 가 장 큰 매력은 괴테와 오리엔트의 관계를 하나의 스토리처럼 서술해간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괴테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소년 괴테는 구약의 족 293 괴테의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생각한다 장들 이야기―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그의 아들들―를 특히 좋아했다. 청 년시절에는 모하메드에 대한 드라마를 쓰기 위해 코란과 이슬람의 고대사 를 연구했다. 아랍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관심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확대 되어 중앙 아시아를 넘어 인도에 까지 이르고 만년에는 중국에까지 도달 하게 된다. 메클렌부르크는 소년 괴테가 어린 시절 구약을 즐겨 읽었던 것 에서부터 노년의 괴테가 중국 시들을 읽고 그 자신도 중국풍으로 시를 써 보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괴테의 오리엔트 탐험을 긴 생애에 걸쳐 진행된 ‘상상의 오리엔트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있다. 이 여행은 외국 인이나 외국생활자와의 서신교환, 그리고 괴테를 방문한 외국인들과의 대 화를 통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통로는 ‘책’이었다. 괴테가 실제로 여행한 공간은 약 4만 킬로가 되는데, 이보다 훨씬 많은 거리를 책 을 통해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터키부터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까지. 자바와 수마트라에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까지 괴테는 책으로 여 행했다. 얼핏 보면 전세계의 여기저기를 괴테의 상상력이 옮겨다닌 듯 하 지만, 메클렌부르크는 괴테의 정신적인 여행이 지속적으로 동쪽, 즉 오리 엔트를 향하고 있었음을 강조한다. 오리엔트를 향한 열정은 특히 『서동시 집』을 집필하던 시절에 두드러졌다. 괴테 스스로 자신의 이러한 경향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했을 정도다. 사이드도 『오리엔탈리즘』에서 괴테의 『서동시집』을 여러 번 인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괴테는 사이드가 비판적으로 거론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중 요 예시일까? 가령 『오리엔탈리즘』의 역자인 박홍규 교수는 역자 후기에 서 괴테를 사이드가 보는 오리엔탈리즘의 유형으로 간주하며 “괴테로부터 마르크스, 베버에 이르기까지, 셰익스피어로부터 T. E. 로렌스에 이르기까 지, [...] 제국주의 시대의 모든 지도자들을”(사이드 675)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메클렌부르크는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과 괴 테의 오리엔탈리즘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 저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어떤 경향을 가리키는 것인지를 규명하는 작 TRANS–HUMANITIES 294 업이 필요할 것이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다양한 의미로 사용한다. 우선, 푸코적 의미에서 ‘권력’과 연관되는 지식으로서의 ‘동양학’ 특히, 식 민주의 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된 동양학 연구를 가리킨다. 이는 주로 18, 19세기 동양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영국, 프랑스와 관련된다. 사이드 스스로 언급하고 있듯이 이 시기의 독일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사이 드는 독일 오리엔탈리즘에 대해서는 철저히 논의하지 않고 있음을 고백하 면서 19세기 초까지 독일의 학문은 유럽 학문의 정점에 서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리엔탈리즘의 흐름과는 긴밀히 연관되지 못한 편이었음을 지적한다. 아울러, “독일에는 인도나 레반트,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과 프랑 스의 이해관계에 해당되는 것이 전혀 없었다”는 것, 그리고 “독일인에게 동양이란 오직 학문적인 동양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고전적인 동 양”이었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독일에서 동양에 관해 나온 저 술로서 괴테의 『서동시집』과 슐레겔의 『인도인의 언어와 지혜에 관하여』 를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꼽고 있다.5 따라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크 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협의에서, 식민지에 대한 정 치적 헤게모니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오리엔탈리즘이 있고, 둘째, 광의적 으로 이 시기 서유럽 전체에서 나타나는 동양에 대한 관심을 의미하는 오 리엔탈리즘이 있다. 독일에서 나타나는 ‘학문적 동양’이나 ‘고전적 동양’도 후자의 오리엔탈리즘에 해당된다. 물론 협의의 오리엔탈리즘과 광의의 오 리엔탈리즘도 미셸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과 『감시와 처벌』에서 설명하 는 ‘지식과 담론’의 관계처럼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이 러한 연관이 괴테의 『서동시집』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한 메클렌부르크의 생각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첫째, 사이 드적인 의미에서의 오리엔탈리즘은 헤게모니적, 우월적 관점이지만, 괴테 는 이슬람문화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배우고, 경청하는 자세였다는 것이 5. Cf. 사이드. 47. 295 괴테의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생각한다 다. 괴테의 태도는 문화적인 차이를 주목하고 존중한다는 점에서 헤게모 니적이 아니라 상호문화적으로 개방적인 자세였다. 둘째, 사이드의 오리 엔탈리즘은 오리엔트를 하나의 덩어리처럼 균질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 고, 이러한 경향이 괴테와 동시대에 살았던 많은 작가들에게서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괴테는 오리엔트를 ‘하나의 오리엔트 문화’로 뭉뚱그려 관찰하지 않았다. 이는 이슬람 문화, 인도문화, 그리고 중국문화 등 다양한 오리엔트 문화를 평가하는 괴테의 태도가 뚜렷히 구별된다는 점에서도 나 타난다. 괴테는 이슬람 문화에서는 시문학과 종교의 관계에 집중했고, 부 정적이라기보다는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인도문화에 대해서는 관심도 덜했고 비판적인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중국문화를 볼 때 괴테의 주된 관심은 중국의 자연관에 있었다. 오리엔트에 대한 괴테의 관심은 옥시덴트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것이 아 니라 오리엔트와 옥시덴트의 공통점을 찾아나서는 것, 크게 보아 문학이 이 세계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전망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메클렌부 르크의 생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타문화에 대한 괴테의 모든 관심들은 궁극적으로 ‘세계문학’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말하자 면 청년기에 코란을 읽으며 마호메트에 대한 송가를 떠올렸던 것에서 노 년기 중국의 시문학들을 읽으며 자신도 중국풍의 시들(Chinesischdeutsche Jahres und Tageszeiten)을 창작할 때까지 거의 50년이 넘는 기 간에 걸쳐 ‘상호문화적인 문학 프로젝트들’(interkulturelle poetische Projekte)이 진행되었으며,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사상적으로 마무리하는 작업이 ‘세계문학’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Ⅳ . 세계문학 한국어로 ‘세계문학’에 해당되는 독일어는 두 개다. ‘벨트리테라투어’ (Weltliteratur)와 ‘벨트포에지’(Weltpoesie)가 그것들이다. 먼저, TRANS–HUMANITIES 296 Weltpoesie는 모든 문화에 존재하는 문학적 표현의 속성을 가리킨다. 이 런 의미에서 괴테는 ‘본래 시문학은 오로지 하나일 뿐’(eigentlich gibt es nur Eine Dichtung)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Weltliteratur’다. 메클렌부르크는 괴테의 세계문학 개념을 다음과 같 이 정리하고 있다. 세계문학은 첫째, 민족문학에 대립되는 개념이며, 둘째, 문학이 근대 이후로 점점 더 상호문화적으로 국제적 교류를 하게 되는 경향 을 가리키고, 셋째, 전통문학과 근대문학의 차이를 설명할 때도 사용되는 개념이며, 넷째, 문학예술의 카논이라고 할 수 있을 작품들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는 개념이다. 메클렌부르크는 특히 두 번째 맥락, 즉 ‘문학적 세계 교 류’에 주목하도록 하는데, 여기서의 ‘세계문학’은 세계적인 수준의 문학, 또 는 세계에 있는 문학들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의 영향 아래 나타나는 문학의 새로운 경향을 가리킨다. 여기서 ‘세계화’는 ‘글로벌화’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되고 있다. 메클렌부르크에 의하면 글 로벌화란 괴테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구적인 것, 자본주의적인 것 이 전 세계의 문화를 동질화시켜온 결과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메클렌부르크가 세계화에 대한 괴테의 우려와 ‘문화산업’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을 연관시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즉, 호르크하이머와 아 도르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문화산업’(Kulturindustrie)의 부정적 측면 들을 비판하는 관점을 원용하여 괴테의 입장을 재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강조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생산의 논리가 정신적 영역에도 전이된다는 것이었다.6 말하 자면 작가는 상품을 생산하고 상품의 가치를 매기는 자세로 작품을 대하 게 된다는 의미다. 메클렌부르크가 인용한 괴테의 언술은 이러한 맥락에 잘 부합하는 듯이 보인다. 6. Cf. Horkheimer and Adorno. 145. 297 괴테의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생각한다 모든 일의 목표는 오로지 오늘날의 독자나 관객의 갈채를 끌어내는 일에 집중될 것이다. 작가들의 창의력은 망하고 창조적 불길은 사그라진다. 작가는 자신의 명예도 돈을 받고 팔아버린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가 얻 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노동력, 판타지를 과도하게 자극한 나머 지, 때가 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지고 만다. 조용히 숙고하거나 말없이 생각들을 모아가지 못하고, 따라서 결코 완숙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다. 그래서 모든 것이 유성처럼, 번개처럼, 한순간의 광휘처럼 빛났다가 사라지고, 결국은 모든 것이 사라진다. Alles wird nur darauf angelegt, dem Leser oder Zuschauer von heute Beifall abzulocken, drunter geht die Eigenart des Schriftstellers zugrunde, das schöpferische Feuer sinkt zusammen; er verkauft seine literarische Ehre. Und was hat er davon? Er überreizt seine Arbeitskraft, seine Phantasie, und erschöpft sich vor der Zeit, zu ruhiger Überlegung, zu stiller Sammlung kommt er nicht, daher auch nie zu völliger Reife; so leuchten und gehen sie alle dahin wie Meteore, ein Blitz, ein Glanz, und alles ist vorüber. (재인용. Mecklenburg 446) 대중문화의 위력에 대한 괴테의 예감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괴테 특유 의 낙천적 세계관이다. 괴테는 대중문학으로서의 세계문학이 점점 더 진 군해오는 것을 회의적으로 관찰했음에도 불구하고 칸트적 의미에서의 ‘의 사소통적 이성’(kommunikative Vernunft)이 작동하리라고 기대했다. 대 중문화에 의한 경제적 관점의 획일적 관철을 우려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대중들에 의해서도 이른바 ‘공통 감정’(sensus communis)이 작동되어 올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집단 지성 같은 것을 기대하는 셈이다. TRANS–HUMANITIES 298 Ⅴ . 나가며 문학연구자들에게서, 특히 괴테, 셰익스피어와 같은 거장들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경향이 있다. 연구자가 연구대상과 감정 적으로 자주 밀착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연구대상에 대한 분석과 찬미가 구별되지 않기도 한다. 독일어로도 이러한 현상을 가리키는 표현 이 있는데, ‘괴테올로기’(Goetheologie)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원래는 괴 테의 이름에다 문헌학 또는 문학연구를 의미하는 ‘필롤로기’(Philologie)를 합성한 단어로, 괴테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를 의미하는 중립적 용어였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괴테올로기가 ‘괴테’와 ‘테올로기’(Theologie, 신 학)의 합성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경우 괴테올로기는 작가 괴테를 거의 신격화하는 듯한 괴테 연구경향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의 괴테연구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 ‘괴테올로게’(Goetheologe)다. 메클 렌부르크의 책은 이러한 괴테올로게들의 문제점을 강조하는 책이기도 하 다. 이들은 괴테의 위대성을 드러내는 점에서는 활발하지만, 괴테의 한계 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 못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차라리 함구하 는 쪽을 택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괴테가 민주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 는가, 그리고 유대인이나 집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는 문제들 은 괴테올로게들이 즐겨 다루는 주제에 들어가지 않는다. 메클렌부르크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비판적으로 다룬다. 오리엔탈리즘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괴테 연구사를 일별해보면 알 수 있듯이, 괴테를 찬미만 하는 것 이 아니라, 괴테의 장단점을 모두 고찰함으로써 괴테의 모습을 보다 입체 적으로 재구성해온 괴테올로게들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비유적 으로 말하자면 근대서구에 오리엔탈리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Der andere Orientalismus)도 있었듯이, 부정적인 의미에 서의 괴테올로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괴테올로게’들도 있어 299 괴테의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생각한다 왔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기존의 괴테올로게들은 잘 다루지 않았던 부분들을 다루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괴테의 새로운 모습을 발굴하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의 저자도 본인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또 다른 괴테올로게’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서평을 쓰는 필자도 ‘괴테연구’의 길에 들어선지 이제 30년이 넘어섰 다. 이 서평을 준비하는 시간들은 메클렌부르크의 저서와 씨름하는 시간 인 동시에 그동안의 작업들이 ‘괴테 필롤로기’였는지, 아니면 ‘괴테 테올로 기’였는지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사실 한국에서의 괴테 연구에 있어서 비판적인 접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적 은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무엇보다도 한국의 괴테올로게들이 읽 어야 할 책이다. TRANS–HUMANITIES 300 Works Cited Horkheimer, Max and Theodor Adorno. “Dialektik der Aufklärung.” Gesammelte Schriften. Vol. 5. Frankfurt am Main: FISCHER Taschenbuch, 1987. Print. Mecklenburg, Norbert. Goethe. Inter- und transkulturelle poetische Spiele. München: Ludicium, 2014. Print. Polaschegg, Andrea. Der andere Orientalismus. Regeln deutsch-morgenländischer Imagination im 19. Jahrhundert. Berlin: Walter de Gruyter, 2005. Print. Said, Edward [사이드, 에드워드]. Orientalijeum [Orientalism, 오리엔탈리 즘]. Paju [파주]: Kyobo Book Store [교보문고], 1999. Pri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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