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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서평 ‘복잡성’으로서의 일본/일본인 이한정 (상명대학교) 일본의 근대화는 서양과 조우하면서 시작되었다. 18세기에 네덜란드 학문이라 일컫는 난학(蘭學)이 서양의 학문으로 일찍이 일본에 유입된 일 은 있었으나, 경제, 사회제도, 문화 등 서양 문명 전반을 일본이 총체적으 로 받아들인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다. 이 과정에서 서양 문물을 맹목 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의 모습을 서양인들은 ‘원숭이 흉내’라는 표현 을 사용하여 묘사했다. 1883년에 외국인 접대소의 명목으로 도쿄 한복판 에 세워진 서양식 건물 로쿠메이칸(鹿鳴館)에서는 불야성을 이루며 서양 인과 일본인이 어우러진 화려한 연회와 무도회가 개최되었고, 여기에 참 석하는 일본인은 서양식 연미복이나 드레스를 착용했다. 에서는 서양식 옷차림으로 치장한 일본인 남녀가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거울에 나타난 일본인 남녀의 얼굴은 원숭이 형상이다. 이는 프랑스 화가 조르주 비고(Geores Ferdinand Bigot)가 19세기 말에 서양 문명을 받아 들이는 일본인의 모습을 스케치한 풍자화다. 인간을 동물로 비유하는 ‘원 숭이 흉내’라는 말과 그것을 담은 풍자화는 서양인의 일본인 비하이면서 자기를 망각하고 오로지 서양 문명만을 추종하는 타자의 눈에 비친 일본 인의 모습이다. 이러한 서양인이 바라본 일본인의 모습과 사뭇 대조를 이루는 것은 조르 주 비고의 스케치와 거의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 영어로 발간된 의 Trans–Humanities, Vol. 8 No. 2, June 2015, 235–46© 2015 Ewha Institute for the Humanities TRANS–HUMANITIES 236 니토베 이나조(新渡戸稲造)가 집필한 『무사도』(武士道)다. 영국의 기사도 와 비견되는 일본의 ‘무사도’는 이렇게 탄생되어 서양 문명에 못지않은 일 본 표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서양인이라는 타자의 눈으로 일본이 형상되기 시작한 이후 일본인은 스스로 끊임없이 남에게 비추어지는 일본 및 일본 인 이미지에 신경을 썼다. 19세기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은 세계 어느 나라의 국민보 다도 일본 및 일본인의 이미지, 또는 일본 문화에 관해 무성한 논의에 관심 을 쏟고 있다. 소위 ‘일본론’ 혹은 ‘일본문화론’이라 분류할 수 있는 문헌이 넘쳐나며, 그 계보에 관한 논의나 연구서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1990년 에 간행된 아오키 다모쓰(靑木保)의 『일본 문화론의 변용』(日本文化論の 変容)은 이러한 일본문화론이 시기에 따라 ‘부정적 특수성’, ‘역사적 상대 성’, ‘긍정적 특수성’으로 바뀌어간 사례를 밝혔다. 일본 문화를 논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학문분야로 자리매김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자화상을 자기 안에서 찾거나 서양인 등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찾기도 한다. 그리고 뭔가 확고한 ‘일본’, ‘일본인’, ‘일본문화’ 그림 1 조르주 비고의 풍자화 그림 2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1899) 237 서평: ‘복잡성’으로서의 일본/일본인 가 서양과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일본 의 저명한 문학자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미국에게 패전한 일본의 자존심을 회복하자는 결의를 보이고, 진정한 일본이 있다는 신념을 굽히 지 않으며 ‘천황’을 정점으로 본래의 일본을 회복하자고 외치며 1970년에 자결했다. ‘일본’이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만세일계’(萬世一系)로 존재한다 는 확고한 신념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말하자면 미국 에 대한 과잉방어이자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빚어진 자기 형성의 굴절을 의미한다. 『일본 표상의 지정학-해양· 원폭· 냉전· 대중문화』(日本表象の地政学 海 洋· 原爆· 冷戦·ポ ッ プ カ ル チ ャ ー, On the Pacific Waterfront: Geopolitics in Cultural Formations of “Japan”)은 바로 미시마 유키오를 비롯하 여 다수의 일본인을 다루면서 일본이 어떻게 표상되었는지를 살피고 있 다. 이렇게 보자면 루스 베네틱트(Ruth Benedict)의 『국화와 칼』(菊と刀) 로 대표되는 여느 일본 및 일본인에 관한 논의와 다를 바 없을 것이나, 일 그림 3 『일본 표상의 지정학』 TRANS–HUMANITIES 238 본을 비추는 거울은 서양인이라는 타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국화와 칼』 로 상징되는 서양인의 일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려는 의도에서 쓰인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의 『일본인이란 무엇인가』(日本人とは 何か)와 같은 일본인 스스로 일본의 모습을 좇지도 않는다. 이 책에서 일 본을 비추는 거울은 근대 이후 일본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이 라는 나라다. 일본에 끼친 미국의 영향을 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책은 미국과 일본 사이에 가로놓인 환태평양을 두고, 그 경계가 맞닿는 현장에 서 형성된 일본이라는 이미지의 ‘복수성과 잡종성’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 및 일본인을 논하는 다수의 책은 누가 어느 위치에서 왜 발화하느 냐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띤다. 『국화와 칼』이나 『일본인이란 무엇인가』 는 동일하게 일본을 말하고 있지만 표상되는 일본 이미지는 상이하다. 전 자는 미국인이 ‘타자’로서 일본을 말하고, 후자는 일본인이 ‘자기’로서 일본 을 말한다. 그러나 『일본 표상의 지정학―해양·원폭·냉전·대중문화』에 서 일본 및 일본인에 관한 이야기는 서양인이나 일본인이라는 특정 주체 의 위치에서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을 ‘타자’나 ‘자기’로 그리려는 의 도가 아니라 미일의 관계망에서 그려지는 일본을 말하고 있다. 근대 일본 의 시작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 과 일본에 가로놓인 경계선을 통해 일본을 조감하고 있다. ‘국화와 칼’과 같은 타자에 대한 확언이나 ‘일본인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자기에 대한 명 제가 처음부터 주어져 있지 않고, 일본과 미국의 관계성에서 일본 이미지 가 형성된 경로를 탐색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말하는 일본은 어떤 시각이나 기준으로 인해 정합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경계 선 위에서 제각기 색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국화와 칼』이나 『일본인이란 무엇인가』라는 문헌에서 언급되는 일본 및 일본인에 대한 정돈된 색채와 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책의 표제에 있는 ‘일본 표상’이란 말에 이끌려 일본에 대해 ‘타자’의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다가는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 다. 특정 주체의 일관된 목소리로 일본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이 책 239 서평: ‘복잡성’으로서의 일본/일본인 의 특징이다. 책의 부제로 달린 ‘해양’ ‘원폭’ ‘냉전’ ‘대중문화’는 바로 미일 관계의 현장성을 부각시키는 어휘다. 미국과 일본이 맞닿은 현장에 각각 해양, 원폭, 냉전, 대중문화가 자리 한다. 미일의 지정학적 시간과 공간에 배치된 이 낱말들의 위치는 대강 이 렇다. 일본과 미국을 잇는 드넓은 바다, 즉 환태평양에서 기이한 인생을 펼친 두 명의 일본인이 등장하여 ‘해양’을 무대로 미국과 관계를 맺은 일본인을 쫓는다. 근대화의 물결을 탄 일본은 서양 따라잡기에 여념이 없던 1894년 청나라와 전쟁을 벌인 이후, 1904년 러일전쟁,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 일본 상공에 나타난 미군 비행기에 의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세계 최초로 ‘원폭’ 세례를 받 았다. 이렇게 하여 전쟁이 종식된 후에 찾아온 것이 ‘냉전’의 시대다. 미국 과 소련, 중국 등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1951년 일본은 미국과 ‘미일안전 보장조약’을 맺었고, 이를 계기로 일본은 호전적인 사무라이에서 보호받을 여성으로 변모했다. 반세기 넘게 전쟁의 세계에서 살아온 일본이 1968년, 패전 23년 만에 ‘아름다운 일본’으로 세계에 얼굴을 내민 것은 게이샤를 주인공으로 한 가 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雪国)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덕분 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진정한 ‘아름다운 일본’이란 예로부터 이어져온 일 본정신에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시마 유키오는 미국문 화에 강하게 경도된 인물이었다. 아니 미시마 유키오만이 아니라 일본의 ‘대중문화’ 전반이 미국문화 속에서 배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 다. 미국은 현재의 일본을 지탱하는 기반이며, 미국의 문화는 일본인들이 일본문화라 생각하는 일본적인 것과 얽혀 있다. 그 현장에 있는 일본을 이 책은 단일한 일본이 아닌 복잡한 일본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편자 엔도 후히토(遠藤不比人)는 서문에서 “‘표상’(表象, representation) 으로서의 ‘일본’을 역사화·정치화하는 작업은 이제 인문과학에서 지배적 TRANS–HUMANITIES 240 인 조류”라고 말하면서 일본 표상에 관한 연구는 국민국가와 포스트콜로 니얼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문화연구에서는 그동안 많은 성과를 올렸다고 언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표상 연구에 있어서 ‘환태평양’ 또는 ‘일미 관계’라는 시점에서의 고찰은 여전히 충분치 않다.”라고 지적한다. 1982년에 문예평론가 가토 노리히로(加藤典洋)의 『미국의 그림자』(ア ヤ リ カ の影)와 2011년에 후지와라 기이치(藤原帰一) 외 편의 논문집 『미국의 그림자 아래에서―일본과 필리핀』(ア ヤ リ カ の影のもとで―日本と フ ィ リ ピ ン) 이 간행되었으나, 아직 일본에서 ‘미국의 그림자’에 관한 논의가 더 필요하 다고 말한다. 나아가 『미국의 그림자』 등이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에 시기를 다루 는 데 머물고 있는데 반해 이 책은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일 관계 속에서 부각된 ‘일본적인 것’이 어떤 지정학적 자장 속에서 산출되었는지를 묻고 있다. 엔도 후미토가 “이 책이 일관되게 규명 한 것은 미국이라는 파도가 겹겹으로 밀려드는 ‘태평양의 파도치는 바닷가 에서’ 형성되어온 ‘근대 일본’의 복잡하고 잡종적인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 듯이, 일본 이미지는 일면으로 해명될 수 없다. 책의 내용을 개괄하면 다음 과 같다. 총 8편의 논문을 수록한 이 책은 논문 2편씩을 묶어 전체 4부 구성을 이 룬다. 제1부 ‘해양’에서는 일본과 미국 사이에 가로 놓여있는 환태평양을 둘러 싼 근대 일본인의 모험과 좌절을 다루고 있다. 요시하라 유카리(吉原ゆか り)의 「메이지기에 환태평양에서 표류하다―다나카 쓰루키치와 오야베 젠이치로」(明治に環太平洋でロビンソンする―田中鶴吉と小矢部全一郞) 는 1719년에 초판이 간행된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가 일본 에 수용되면서 ‘일본의 로빈슨’이 탄생된 비화를 고찰했다. 『로빈슨 크루 소』는 1850년 무렵에 네덜란드판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소개된 후 오리지 널판의 최초 번역이 1883년에 『절세기담 노민손 표류기』(絶世奇談 魯敏 241 서평: ‘복잡성’으로서의 일본/일본인 孫漂流記)과 1894년에 『절도표류기』(絶島漂流記)로 간행되었다. 소설 속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는 근면정신과 모험심의 기호로 당시 일본에서 받 아들여졌다. 이로 인해 ‘일본의 로빈슨’을 자칭하거나 그와 같이 불리길 원 하는 사람들이 출현했다. 이 가운데 두 명의 기이한 인물 다나카 쓰루키치 와 오야베 젠이치로는 환태평양을 넘나들며 “정치와 문화에 있어서 압도 적인 존재였던 ‘미국’과의 동일화· 차별화를 통해 자기형성을 꾀했던 ‘일본’ 의 도전과 좌절을 강하게 상기시키는 인물”(41)이었다. 와키야 히로마사(脇田裕正)의 「로망, 마도로스, 그리고 콘래드―요네쿠 보 미쓰스케와 근대 일본의 ‘바다’」(ロマソス·マ ド ロ ス·コ ン ラ ッ ド―米窪満 亮と近代日本の‘海’)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서문을 쓴 근대 일본의 해양문학의 대표작이라 평가받는 『바다의 로망』(海のロ マ ン ス)의 저자 요 네쿠보 미쓰스케를 다루고 있다. 이 인물은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사는 마 도로스에 대한 강한 동정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그런데 1940년에 조 지프 콘래드(Joseph Conrad)의 『나르시소스호의 흑인』(The Nigger of the Narcissins, 1897)을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작품이 지니는 고유의 역사 성을 말소하고 말았다. 콘래드의 작품을 “제국일본의 ‘모든 국민 계층에 대 한 해사사상의 보급을 고양·진작’하는 계몽서로 간단히 변용”시켜버리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바다에서 생활하는 뱃사람의 처지에서 일본의 육지 에서 벌어지는 해양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으려 했던 요네쿠보 미 쓰스케의 태도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육지, 즉 제국 일본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으로의 변모해 갔다. 해양문학의 선구자는 전쟁이 고조되는 1940년에 이르러서 “바다를 자유로운 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대지와 마찬가지로 국경에 의해 획정되고 관리되는 영역”(74)으로 보았다. 제2부 ‘원폭’에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으로부터 원폭을 투하당한 일본에서 원폭이 부재하는 현상을 짚으면서 원폭으로 상징되는 미국에 대 해 일본인의 양가적 태도를 살피고 있다. 사이토 하지메(斎藤一)가 쓴 「후 쿠하라 린타로·히로시마·원자폭탄―연구 경과 보고」(福原麟太郞, 広島, TRANS–HUMANITIES 242 原子爆彈―硏究経過報告)는 실재하는 원폭이 영문학자의 텍스트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 점을 주목하면서 미국과의 관련성 속에서 ‘일본’의 실 체가 굴절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후쿠하라 린타로라는 히로시마 태생의 저명한 영문학자는 누구보다도 일본의 ‘피폭’이 가져온 인류사적 불행을 미국에 말할 수 있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끝내 ‘히로시마’와 ‘원자폭탄’에 관 해 침묵했다. 그에 반해 같은 히로시마 태생의 영문학자 오하라 미야오가 『영어번역 원폭시집』을 발간해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자 사회운 동가인 엘리너 루스벨트 등에게 보냈다. 원폭을 대하는 두 명의 영문학자의 격차는 미국과 관계하는 일본인의 상이한 태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히비노 게이(日比野啓)의 「『이해한다니!』를 진짜로 이해하기 위하여― 후쿠다 쓰네아리의 ‘미국’」(福田枑存『解ってたまるか!』における「ア メ リ カ 」 なるもの)도 패전 후에 활동한 일본의 대표적 극작가 후쿠다 쓰네아리의 미 국에 대한 양가적 모습을 분석한다. 후쿠다 쓰네아리는 사회풍자극 형식 으로 일본 좌익 지식인의 리버럴한 사상을 비판하고, 전쟁 시기의 ‘천황의 위력’이 전쟁 이후 ‘원폭의 위력’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풍자한 극을 썼 다. 그러나 후쿠다 쓰네아리는 패전국 일본을 점령하는 미국에 버림받지 않으려는 태도에서인지 “미국(=‘전체’)에 종속되는 것은 일본의 좀 더 나 은 미래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127)로 인식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을 ‘얄팍한 조개껍데기’로 비유하면서 이를 ‘가짜’로 의심하기도 했다. 이는 패전 후 미국을 대하는 일본의 이중적 태도가 투영된 일례라 할 수 있다. 제3부 ‘냉전’은 1945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적국에서 우국으로 바뀐 일 본이 미국에 의해 상반된 이미지로 그려지는 예를 다루고 있다. 냉전 시대 에 미국의 기준에 맞춰 일본이 사무라이에서 게이샤로 표상된 사례를 가 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통해서 밝히고 있으며, 미국과 결별을 시도 하려는 몸부림에서 자신을 불태운 미시마 유키오 안에 내재한 미국 문화 를 들추면서 냉전 시대에 일본과 미국의 복잡한 관계성을 보여준다. 오치 243 서평: ‘복잡성’으로서의 일본/일본인 히로미(越智博美)의 「가와바타와 ‘설국’의 발견―일미안전보장조약 산하 에서(Kawabataの誕生『雪國』· 冷戰· ノーベル賞)」는 일본의 첫 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아름다운 일본’이 미국의 냉전 전략 에 맞춰 아시아 표상을 재창조하려고 했던 ‘냉전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임을, 『설국』을 미국인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Edward. G. Seidenstiker) 의 정치적 활약상과 함께 살피고 있다. 언뜻 보면 정치성과 무관해 보이는 ‘아름다운 일본’이라는 이미지가 실은 냉전 시대의 정치적 소산으로 형성 된 ‘일본’인 것이다. 엔도 후히토의 「증후로서의 (상징)천황과 미국―미시마 유키오의 ‘전 후’를 다시 읽다」(症候と レ ス の(象徵)天皇と ア メ リ カ―三島由紀夫の「戰後」 を再読する)는 “‘미국화’된 ‘전후 일본’을 목숨 걸고 부정함과 동시에 누구 보다도 향락적으로 그것을 향수(긍정)”한 미시마 유키오의 미국에 대한 양 가적 태도를 규명한다. 미국을 긍정함과 동시에 부정해야만 하는 시기에 미시마 유키오는 미국에 의한 상징 천황을 일본의 정신과 같은 ‘숭고한 대 상’으로 받드는 ‘(상징) 천황 페티시즘’으로 미국을 승인하는 한편 부정하고 있었다. 무의식적인 이중성이 미국과의 관련 속에서 자리한 지점을 포착 하고 있는 것이다. 제4부 ‘대중문화’는 전쟁에 패배한 일본이 패전 직후에 미국문화에 환호 한 현장을 주시하면서 1945년 패전 전후에 미국문화는 오락의 일종으로 일본인들에게 계승되었다는 점을 고찰한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 현대 음 악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카노 마사아키(中野正昭)의 「미국을 꿈꾼 코미디 언―후루카와 롯파의 아메리카니즘」(ア メ リ カを夢みた コ メ デ ィ ア ン 古川緑波 のア メ リ カ ニ ズ ム)은 1920년대에 영화 잡지 편집자로 활약했던 후루카와 롯 파가 1932년에 희극배우로 전신하고서 미국 코미디의 일본화에 앞장섰다 는 점을 밝힌 후, 후루카와가 1945년 패전 후에 미국 그 자체에 쏠리면서 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사령부에 점령당한 일본에서 아메리카니즘을 구현한 인물로 활약한 사실을 고찰한다. TRANS–HUMANITIES 244 겐나카 유키(源中由記)의 「부처 만들고 영혼 찾는다―피치카토 파이브 와 일본 대중음악의 진정성(仏作って 、 魂ソウルを採す―ピチカ ー ト· ア ァ イ ヴ と 日本のポピュラー音樂の眞正性)」은 1990년대 최신 유행에 민감한 일 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렸던 뮤지션 피치카토 파이브 (PIZZICATO FIVE)가 마지막 작품으로 2001년에 발매한 ‘사· 에· 라· 자폰’ 에 삽입된 ‘기미가요’를 분석하고 있다. 이 앨범에 들어있는 기미가요는 정 치적 의도나 그에 따른 독해와는 별개로 음악가의 편집기술이 일본이라는 국지성을 벗어나 세계의 표준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났다고 보았다. 일본 의 애국가에 해당하는 ‘기미가요’는 일본의 상징성을 띠고 있으나, 피치카 토 파이브의 음악에서 기미가요는 정치성을 담은 일본 표상의 범위를 넘 어 음악성을 갖추고 있어 세계적인 대중음악사에 다가간 음악이라고 평가 했다. 이렇게 보자면 대부분의 논문은 미국과의 관련성 속에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미국을 내면에 받아들인 인물을 다루고 있다. 그에 비해 가 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다룬 논문은 미일관계의 구도 속에서 외부에 서 비친 일본을 논하고 있으며, 피치카토 파이브의 음악을 다룬 논문은 미 국 음악과의 접합 속에서 일본적인 색채를 가미하면서 일본 현대 음악이 세계 음악으로 거듭났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미일관계라고 해도 피치카 토 파이브의 논문은 약간 빗나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음 악 장르까지를 포괄하면서 이 책이 일본과 미국의 관계를 부각시킨 점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은 현재에도 일본에 절대적인 존재이다. 1853년에 일본 앞 바다에 흑선을 몰고 들이닥친 페리 해군 제독과 1945년에 패전국 일본을 점령하 기 위해 도쿄의 상공을 날아와 군복 차림으로 비행기에서 내린 맥아더는 일본인들에게 영원히 각인된 미국이자 미국인이다. 일본인들은 이 두 사 람을 통해 경계선 너머 미국을 보았고 다시 미국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았 다. 어찌 보면 이 ‘바라보았다’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 245 서평: ‘복잡성’으로서의 일본/일본인 면 이 책에서 다루는 ‘일본의 로빈슨’을 자처하는 다나카 쓰루키치와 아메 리카니즘의 구현자로 자부심을 가진 후루카와 롯파, 미국의 문화를 체현 하는 삶을 살면서 미국을 거부하는 몸짓을 한 미시마 유키오 등은 스스로 의 눈으로 미국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요시미 슌야(吉見俊哉)는 『왜 다시 친미냐 반미냐―전후 일본의 정치 적 무의식』(오석철 옮김, 산처럼, 2008)의 「머리말」에서 일본에서 디즈니 랜드의 소비를 고찰할 때 “‘미국’이 이미 바다 건너편의 타자라기보다 일본 사회의 문화 소비를 가동시키는 내부적인 심급임”(9)을 알게 되었다고 말 하고 있다. 요시미 슌야의 책에는 ‘전후 일본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부제 가 달려있다. 패전 후 일본인들의 일상 의식 속에 미국이 깊숙이 뿌리 내 린 점을 이런 표현으로 묘사했다. 정치적으로 미국은 일본의 외부에 강자 로 있으나, 일상의 문화 속에서 미국은 공기처럼 일본인들의 내부에 있는 것이다. 현재에도 이 같은 사실은 별반 다르지 않다. 2015년 4월 29일 아 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은 세계적 관심사를 받았다. 일본이 위안부 왜곡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에 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띤다고 미국은 판단한 듯했고, 이로써 미일의 밀월 관계가 과시되는 현장이 연설의 뒤편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사실상 정치나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을 제쳐두고 일본을 말하기가 힘들다. 국내에서 일본을 알기 위해 읽을 수 있는 문헌은 『국화와 칼』이나 『무 사도』 등을 비롯하여 수십 여종이 있다. 이 문헌들은 제각기 다양한 일본 및 일본인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그러나 대부분은 단일적인 일본 이미지 에 치중하기에 이상주의적이거나 현실적 움직임과 거리가 있는 고정된 관 념을 생산하는 일본을 그리는 것이 적지 않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알기 위 해 집어든 책은 더 일본을 알기 어렵게 만드는 일이 종종 있다. 일본이라 는 나라는 허구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그러나 이 책은 한 세기에 걸 쳐 미일관계에서 생산된 다양한 텍스트를 대상으로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일본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일본과 미국은 정치적 영향 관계의 부침 TRANS–HUMANITIES 246 에서 굴곡을 보이고 있으나, 이들 관계성 속에서 보이는 ‘일본적인 것’은 미국에 대해 취하는 일본인의 태도에 나타나는 복잡성에 다름 아니다. 그 래서 이 책은 단일하게 표상되는 일본 및 일본인에 대해 주의를 촉구한다. 일본과 미국의 관계 위에는 실로 다양한 일본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이 일본의 전체를 형성하고 있기에 여느 문헌에서 보여주는 일본 표상처럼 하나의 일본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본의 존재가 경계지점에서 생성된 것을 보여준다. 일본을 고정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인식에 이르게 한다. 『국화와 칼』이나 『일본인이란 무엇인가』는 일본의 독자성에 대한 물음에 서 얻어진 성과다. 이러한 문헌은 일본의 특수성과 균질성을 과도하게 강 조한다. 이에 대해 『일본 표상의 지정학-해양·원폭·냉전·대중문화』는 일본의 독자성을 깨트리며 미국을 대하는 일본인의 복잡한 내면을 들여다 보게 한다. 미국을 둘러싼 일본인들의 행동 혹은 그와 관련된 사건들을 추 적하여 일본 표상의 다면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국가와 국 가 사이를 횡단하면서도, 그 국가의 경계선을 넘는 지점에 다가가 일본에 대한 복수의 시각을 제공한다. 이 책의 필자는 한 명의 연극사· 대중문화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 국문학과 미국문학·문화 전공자로 이루어져 있다. 외국문학자의 시선으 로 일본을 논한다는 점이 내내 시야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평자 역시 한국에 사는 외국문학 연구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중국, 러시아, 일 본, 미국 등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나라다. 이 가운데에서 일본과 미국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한국과 절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과 일본 혹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성 속에서 ‘한국 표상’을 논할 때 이 책에서 배울 수 있 는 것은 적지 않을 것이다. 외국문학 연구자로서 나는 무엇에 침묵하며, 무 엇을 간과하고 있는지를 반추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본인이 바라본 한국 표상은 말했으나, 아직 일본과의 관련성 속에서 한국 표상의 복잡성 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의 표 제에 있는 ‘지정학’이란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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